판은 2013년에 이미 깔려 있었다 · 윤석열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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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은 2013년에 이미 깔려 있었다 · 윤석열 일대기 — 유튜브 영상 썸네일
▶ 영상으로 보기: 유튜브 「정치놀이 김박사」

이 글은 유튜브 「정치놀이 김박사」에 올린 영상의 내용을 글로 옮겨 정리한 것입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께, 대통령이 텔레비전 앞에 섰다. 비상계엄 선포였다. 그로부터 2년도 안 돼 그는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 됐고, 한 사건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다. 많은 사람이 그날 밤을 '갑작스러운 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펼쳐 보면, 이 판은 아주 오래전부터 깔려 있었다.

이 글은 검사 윤석열부터 피고인 윤석열까지를 일곱 판으로 나눠 복기한다. 사실은 출처(언론 보도)에 기대어 쓰고, 글쓴이의 평가는 "(필자의 해석)"으로 따로 표시한다.

1판. 영장을 결재 없이 집행한 검사 (2013)

1960년 서울 연희동에서 태어난 그는 충암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사법시험은 아홉 번째 도전 끝에 1991년에 붙었고, 검사 생활은 1994년 대구지검에서 시작했다.

이름이 처음 크게 알려진 것은 2013년,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을 때다. 그해 가을 그는 상부 결재 없이 체포영장을 집행했다는 이유로 수사팀에서 배제됐고,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아 대구고검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10월 21일 국정감사장에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계속됐다고 증언했다. 이때 나온 말은 훗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로 요약돼 그를 상징하게 된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 2013년 10월 21일 국정감사

기억해 둘 장면이 하나 있다. 2013년에 그는 영장을 결재 없이 집행한 검사였다. 12년 뒤 그는 영장 집행을 막은 대통령이 된다.

2판. 특검 수사팀장에서 검찰총장으로 (2016~2020)

좌천된 검사는 3년 뒤 다시 돌아왔다. 2016년 12월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이 돼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으로 이어진 수사를 이끌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그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혔고, 2019년 7월에는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취임사에서 그는 검찰권이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 뒤, 그를 임명한 정부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다. 이어 추미애 장관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2020년 12월 그는 현직 검찰총장으로는 처음으로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았지만,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8일 만에 돌아왔다. 징계를 받고, 법원에서 이기고, 다시 돌아온다. 이 경험이 그에게 무엇을 남겼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필자의 해석)

3판.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 (2021)

2021년 3월 4일 그는 임기를 142일 남기고 사퇴했다. 사퇴의 이유로 그는 "우리 사회의 정의와 상식,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이 문장도 기억해 둘 만하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5년 뒤 법정에서 다시 등장한다.

사퇴 석 달 뒤인 2021년 6월 그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7월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경선 내내 말이 문제가 됐다. '주 120시간' 발언, '손발 노동' 발언, 토론회 손바닥의 '왕(王)'자, '전두환 정치' 발언까지 이어졌다. 그래도 그는 11월 국민의힘 후보로 뽑혔다.

4판. 0.73%p 차이로 시작한 대통령 (2022)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그는 이겼다. 득표율은 48.56% 대 47.83%, 차이는 0.73%포인트, 24만 7,077표였다. 직선제 이후 가장 적은 차이였다. 절반의 국민이 반대한 채 시작한 대통령, 그 출발선에서 이미 판은 아슬아슬하게 기울어 있었다. (필자의 해석)

당선 11일 만에 그는 청와대를 떠나 용산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직접 발표했다. 취임사에서는 다수의 힘으로 상대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다고 말했다. 그해 9월 뉴욕에서는 "국회에서 이 XX들이"로 시작하는 비속어 영상이 논란이 됐다. 국회를 향한 그의 시선이 처음 드러난 장면이었다. (필자의 해석)

5판. 반국가 세력, 그리고 기울어진 판 (2023~2024)

202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그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했다. 이 단어, '반국가 세력'은 1년 4개월 뒤 다시 등장한다.

같은 해 7월에는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 보고를 받고 격노했다는 의혹이 나왔고, 그는 현재 이 사건의 수사 외압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재판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논란은 2024년 10월 검찰 불기소로 끝났고, 9월부터는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가 불거졌다. 그 사이 2024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합쳐 108석에 그쳤고, 야권 전체는 192석을 가져갔다.

9월에는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에 앉혔다. 야권은 이른바 '충암파'의 군 요직 장악을 문제 삼았고, 여당은 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11월 첫째 주 한국갤럽 직무 긍정률은 17%로 취임 이후 가장 낮았다. 계엄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이었다.

6판. 6시간의 계엄, 그리고 파면 (2024.12~2025)

12월 3일 그는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경축사의 그 단어가 계엄 담화에 그대로 들어갔다. 밤 11시에 포고령 1호가 나왔고, 국회의장은 본회의를 소집했다. 새벽 1시 국회는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선포 155분 만이었다. 새벽 4시 27분께 그는 담화로 계엄 해제를 발표했고, 이어 국무회의가 해제를 의결했다. 약 6시간의 계엄이었다.

12월 7일 첫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의 불참으로 표결이 성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 뒤인 14일 찬성 204표로 가결됐다. 총선에서 야권이 얻은 의석은 192석이었다. 탄핵 가결선 200석을 넘긴 표는 결국 여당 안에서 나왔다.

2025년은 헌정사에 처음 쓰이는 기록들로 채워졌다.

  • 1월 3일 —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이 대통령경호처에 막혀 실패했다. 2013년 결재 없이 영장을 집행했던 검사가 이번엔 영장을 막아선 쪽이었다.
  • 1월 15일 —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됐다. 현직 대통령 체포는 처음이었다.
  • 1월 26일 —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 3월 — 구속 기간 계산 문제로 법원이 구속을 취소해 풀려났다. 이 결정의 법리는 지금도 논란이다.
  •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그를 파면했다. 국회가 든 다섯 가지 사유를 모두 인정했다.

"헌법과 법에 따라"를 외쳤던 검찰총장은 헌법과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내려왔다. (필자의 해석)

6월 3일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49.42%로 당선됐다. 7월 10일 그는 특검 수사로 다시 구속됐고, 8월 12일에는 김건희 여사도 구속됐다. 전직 대통령 부부가 함께 구속된 것도 처음이었다.

7판. 법정의 시간 (2026)

가장 먼저 결론이 난 것은 체포방해 사건이었다. 1월 1심 징역 5년, 4월 항소심 징역 7년, 그리고 7월 9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징역 7년이 확정됐다. 그의 재판 가운데 첫 확정 판결이다. 2013년 영장을 집행하다 징계받은 검사가, 2026년 영장 집행을 막다가 징역 7년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이 됐다. 첫 번째 복선이 여기서 닫힌다. (필자의 해석)

가장 무거운 내란 우두머리 사건은 2월 19일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특검은 사형을 구형했었다. 이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그는 계엄이 국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동기와 명분, 그리고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퇴할 때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계엄을 선포할 때는 자유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법원은 그 명분이 목적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봤다.

모든 재판이 그에게 불리했던 것은 아니다. 명태균 무상 여론조사 사건은 항소심에서 무죄가 났고, 이종섭 전 장관 도피 사건도 1심 무죄였다. 그는 내란 1심 판결을 "정치적 여론과 압박에 굴복한 판결"이라고 비판했고, 확정된 체포방해 판결도 재판소원으로 다투겠다는 입장이다.

남은 판도 있다. 영상 제작 시점 기준으로 내란 우두머리 항소심은 10월 29일 특검 구형, 11월 5일 변론 종결이 예정돼 있었고, 선고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예정된 결말이었나

돌아보면 그는 늘 같은 방식으로 이겨 왔다. 맞서고, 버티고, 법정에서 이기는 방식이었다. 검사 시절에는 그 방식이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돼서도 그는 같은 패를 들었고, 이번 판의 상대는 국회와 헌법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 몰락을 예정된 결말로 읽는다. (필자의 해석)

물론 이것은 해석이다. 맞으면 적중, 틀리면 아님 말고.

※ 사실관계는 언론 보도(아래 출처)를 따랐고, '필자의 해석'으로 표시한 부분은 글쓴이의 의견이다. 내란 우두머리 무기징역은 1심(2026.2.19) 판결이며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수사 외압 혐의 재판 등 확정되지 않은 사건은 유무죄가 정해지지 않았고, 당사자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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