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빌런즈 5편 유시민 — 알고 있다, 그런데 증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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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빌런즈 5편 유시민 — 알고 있다, 그런데 증거는 없다 — 유튜브 영상 썸네일
▶ 영상으로 보기: 유튜브 「정치놀이 김박사」

이 글은 유튜브 「정치놀이 김박사」에 올린 영상의 내용을 글로 옮겨 정리한 것입니다.

유시민의 말에는 늘 같은 구조가 있다. "나는 안다. 그런데 증거는 없다." 감정이 먼저 나오고, 근거는 끝내 따라오지 않는다. 이걸 요즘 말로 '뇌피셜'이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는 그 말버릇과, 그 밑에 깔린 엘리트주의를 기록과 판결, 기사로 따져 본다.

1. 유시민이 직접 쓴 반성문

시작은 2019년 12월이다. 유시민은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봤다고 주장했다. 2020년 7월에는 한 걸음 더 나가, 한동훈 검사가 있던 대검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리고 2021년 1월 22일, 유시민은 사과문을 냈다. 계좌 열람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사과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습니다."
"충분한 사실의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 유시민 사과문 (2021.1.22)

감정이 앞서고, 확신은 있었고, 증거는 없었다. 뇌피셜의 정의를 유시민 본인이 직접 써 놓은 셈이다. (필자의 해석)

사과로 끝나지도 않았다. 대법원은 2024년 6월 17일, 한동훈 당시 검사장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유시민에게 벌금 500만 원을 확정했다. 법원은 2020년 7월 발언을 허위인 줄 알면서 한 말로 판단했다(2020년 4월 발언은 무죄).

2. "일절 하지 않겠다"던 약속

그 사과문의 마지막 줄은 이렇다.

"정치 현안에 대한 비평은 앞으로도 일절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2026년, 유시민은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이번 대상은 이재명 대통령이다. 7월에는 "필연적 실패의 길", 8월에는 "오만한 권력자"라고 했다. 9월 22일에는 검찰개혁을 두고 "대통령이 지금까지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말했다.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본인 말로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연합뉴스 2026.9.28 보도 인용). 내가 못 들었으니 상대가 거짓말을 했다 — 이건 증거가 아니라 자기 확신이다. 2021년 사과문과 똑같은 구조다. (필자의 해석)

청와대는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를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는 것에 유감"이라고 밝혔고, 한 시민단체(사세행)는 9월 28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다만 고발은 고발일 뿐이고, 판단은 수사와 재판의 몫이다.

5년 전 자신이 쓴 반성문, 그 문장을 다시 읽어 보길 권한다.

3. 노동자를 내려다본 말

엘리트주의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건 2025년 대선 직전이었다. 5월 28일 유튜브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유시민은 김문수 후보의 부인 설난영 여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대학생(김 후보)이 노동자와 혼인한 것"
"본인의 인생에서 갈 수 없는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에 있어 제정신이 아니다"
— 유시민 (2025.5.28, 중앙선데이 인용)

설난영 여사는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한국여성의전화가 학력 차별이자 여성·노동자 멸시라며 일제히 비판했고, 같은 진보 진영의 권영국 후보도 "엘리트주의"라고 했다.

학력으로 사람의 자리를 정하는 시선. 필자는 이것을 치졸한 엘리트주의라고 부르겠다.

4. 1980년, 진술서 90쪽

이번엔 46년 전으로 가 보자. 1980년 '서울의 봄', 유시민은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고 총학생회장은 심재철이었다. 이 대목은 언론 보도를 그대로 인용한다.

  • 중앙일보(2019.5.7)에 따르면 계엄 합동수사본부에서 쓴 진술서 분량은 유시민 90쪽, 심재철 13쪽이었고, 유시민 진술서에는 "학생 운동 관련 인사 77명의 이름이 실명 그대로" 적혀 있었다.
  • 심재철 전 의원은 이 진술서가 "다른 민주화 인사 77명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미체포자 18명이 진술 5일 뒤 수배됐다고도 했다.
  • 유시민은 "감출 것은 다 감췄고, 부인할 것은 다 부인했다"(시사저널 2019.5.3 인용)며 반박했고, 수사관을 속이려고 그럴듯하게 창작했다는 해명도 했다.
  • 유시민은 심재철이 잡혀 온 뒤 그 진술에 맞춰 썼다고(7월 중순 이후) 기억했지만, 공개된 진술서 날짜는 유시민 6월 12일, 심재철 6월 30일이었다.

공정하게 말하면 심재철 역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법정 증언으로 오랫동안 비판받아 왔다. 두 진술서 모두 그 시절의 그림자다. 그래서 묻고 싶다. 남을 배신자로 부르던 그 잣대가, 자기 진술서 앞에서는 왜 그렇게 너그러운가. (필자의 해석)

5. 장관, 낙선, 방송, 베스트셀러

공직에 있을 때는 달랐다. 2006년 2월부터 2007년 5월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아 국민연금 개혁을 밀어붙였고, 일은 한다는 평도 받았다.

  • 2008년 총선 대구 수성을 — 낙선(32.6%)
  •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 — 낙선(47.8%)
  • 2013년 2월 — 정계 은퇴 선언

그다음 무대는 방송과 책이었다. 시사 방송의 얼굴이 됐고,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됐다. 잘 읽힌다. 그런데 잘 읽히는 것과 깊은 것은 다르다. 쉽게 단정하는 문장은 잘 팔리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필자의 해석)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누구나 원문을 찾아보고, 판결문을 읽고, 날짜를 대조한다. 증거 없는 확신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그런데 유시민은 여전히 "내가 안다"는 말 하나로 버티려 한다. 바뀐 시대에서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안타깝다.

답은 이미 본인이 써 두었다. 5년 전, 과도한 적대감과 확증편향에 빠졌다고. 그리고 정치 현안 비평은 일절 하지 않겠다고. 그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이제 그만하시라.

※ 사실관계는 아래 출처를 따랐고, '필자의 해석'으로 표시한 부분은 글쓴이의 의견입니다. 1980년 진술서 관련 '77명을 겨눈 칼' 등은 심재철 전 의원의 주장이며 유시민 작가는 이를 부인했습니다. 고발은 혐의가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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