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경기가 더워서 사라졌다 — 취소 대신 늦추면 안 됐을까

올해 KBO리그에서 폭염을 이유로 취소된 경기는 30경기다. 8월 1일 부산(롯데-삼성)과 창원(NC-KIA) 두 경기로 시작해 2일 창원 한 경기, 4일 잠실(NC-두산)과 광주(KT-KIA) 두 경기가 날아갔고, 5일부터 9일까지는 닷새 동안 전 구장 25경기가 통째로 사라졌다. 비로 못 치른 21경기와 그라운드 사정 4경기를 합치면 다시 편성해야 할 경기가 55경기. 폭염 취소가 우천 취소보다 많은 시즌은 올해가 처음이다.
리그가 통째로 멈춘 것도 처음이었다. 국제대회 차출이나 코로나 집단감염 같은 사유를 빼면 정규시즌이 멈춘 건 2021년 7월 이후 5년 만이고, 더위 때문에 멈춘 건 아예 전례가 없다.
멈추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7월 31일 사직에서 롯데 포수 손성빈이 두통과 구토를 호소해 2회에 교체됐다. 같은 경기에서 황성빈도 출루 직후 어지럼증으로 주저앉았다. 그날 부산 일대 기온은 40도 안팎이었다.
KBO는 8월 1일 대응안을 내놨다. 4일에는 이를 단계별로 정리했다. 폭염주의보면 정상 개최, 폭염경보면 홈 구단 의견을 반영해 최대 1시간 지연, 폭염중대경보면 오후 1시 이전에 취소를 결정한다.
그 규정이 만들어진 바로 그날, 인천에서 사고가 났다. 폭염중대경보가 걸린 잠실과 광주는 취소됐지만 한 단계 아래인 폭염경보였던 인천은 규정대로 경기를 치렀고, 9회초에 20대 남성 관중이 계단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 처치를 받고서야 의식을 되찾았다. 그날 문학구장에서만 온열질환 의심 환자가 20명 넘게 나왔다.
이튿날 KBO는 5~6일 전 경기를 취소했고, 6일 긴급실행위원회에서 주말 3연전까지 접은 뒤 11일 재개를 결정했다.
취소의 청구서는 누가 받나
취소는 공짜가 아니다. 청구서는 나중에, 여러 사람에게 나뉘어 날아온다.
먼저 팬이다. 표를 끊고 이동 계획을 세운 사람들의 하루가 통째로 없어진다. 환불은 되지만 그날의 시간과 차비는 돌아오지 않고, 재편성 경기에 기존 티켓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경우도 드물다.
다음은 일정이다. 55경기를 9월 6일 이후에 몰아 넣어야 한다. 여기에 아직 편성되지 않은 경기 9경기가 더 있다. 9월 21일 개막하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대표 선수를 보내는 구단은 그 인원이 빠진 채로 촘촘해진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NC는 우천 7경기에 폭염 8경기가 겹쳐 잔여 경기가 가장 많이 쌓였다. 8월 10일 기준 올 시즌 소화 경기는 500경기로, 2024년 같은 시점의 540경기, 2025년 536경기보다 한참 뒤처졌다.
그리고 선수다. 취소는 더위를 피하게 해주지만 그 더위를 9월로 미룰 뿐이다. 시즌 막판에 연전과 더블헤더가 몰리면 선발 로테이션이 흔들리고 불펜이 갈린다. 열흘을 쉰 KIA와 NC는 이번엔 실전 감각을 잃은 채로 순위 싸움에 복귀했다.
중계와 지역 상권도 조용히 손해를 본다. 편성이 비고, 구장 주변 식당의 하루 매출이 사라진다.
그래서 시간을 늦추면 실제로 얼마나 시원해지나
여기가 핵심이다. "저녁이니까 시원하겠지"는 감이고, 숫자로 확인해봐야 한다. 실제로 잠실과 광주 경기가 취소된 8월 4일, 각 구장 위치의 시간대별 기온과 체감온도를 재분석 자료(Open-Meteo)로 뽑아봤다.
| 구장 | 18시 기온/체감 | 19시 | 20시 |
|---|---|---|---|
|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 32.9 / 36.1 | 31.5 / 35.0 | 30.0 / 33.9 |
|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 | 32.4 / 36.8 | 31.2 / 37.4 | 30.6 / 36.6 |
| 창원 NC파크 | 30.5 / 37.4 | 29.8 / 37.1 | 29.0 / 36.3 |
| 서울 잠실 | 33.3 / 39.2 | 32.5 / 38.6 | 31.8 / 38.3 |
대구는 18시 체감 36.1도가 20시에 33.9도로 내려간다. 2.2도 차이고, 폭염경보 기준선인 35도 아래로 떨어진다. 이 정도면 90분을 늦출 값어치가 분명히 있다.
문제는 잠실이다. 두 시간을 미뤄도 체감온도가 0.9도밖에 안 내려간다. 기온은 떨어지는데 습도가 같이 올라가서 체감이 버티는 것이다. 창원도 1.1도로 비슷하다. 광주는 19시에 오히려 체감이 올라갔다가 20시에 내려온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렇다. 시간 순연은 어디서나 통하는 만능 카드가 아니다. 내륙 건조한 대구에서는 효과가 크고, 습한 잠실과 해안의 창원에서는 반 도 남짓밖에 못 산다. 실제로 8월 5일 잠실 그라운드에 놓인 온도계는 50도를 가리켰고, 2일 사직 관중석 표면 온도는 최대 64.3도까지 측정돼 구단이 화상 주의 안내를 내보냈다. 이건 시간을 옮긴다고 해결되는 종류의 열이 아니다.
그래도 결론은 뒤집히지 않는다. 0.9도든 2.2도든, 취소가 만들어내는 손해와 비교하면 순연 쪽이 남는 장사다. 취소는 그 경기 하나를 없애는 게 아니라 시즌 전체 일정에 빚을 지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KBO도 결국 그 판단을 했다. 8월 6일 실행위원회는 9월 6일까지 전 경기 개시를 오후 7시로 옮겼다. 기존 평일 오후 6시 30분, 주말 오후 6시에서 30분씩 늦춘 것이다.
문제는 그게 30분이었다는 점이다. 위 표에서 30분이 사주는 체감온도는 대구에서 0.5도, 잠실에서 0.35도 수준이다. 방향은 맞는데 폭이 작다.
반론도 있다
막차가 끊긴다. 오후 7시 개시에 3시간 경기면 종료가 10시, 연장이면 11시를 넘긴다. 실제로 부담이다. 다만 이건 야구계가 혼자 짊어질 문제가 아니라 협의로 푸는 문제에 가깝다. 일본 프로야구가 오후 6시 개시를 정착시키던 시기에 사철 회사들이 구장 인접역 막차를 연장하고 임시 열차를 넣었던 전례가 있다. 여름 한 달 남짓, 그것도 10개 구장 인근 노선에 한정된 조정이라면 협상 테이블에 올릴 만하다.
중계 편성이 꼬인다. 이 반론은 예전만큼 세지 않다. KBO 중계의 무게중심은 이미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넘어갔고, 스트리밍은 시작 시각을 옮기는 데 지상파만큼 경직돼 있지 않다. 무엇보다 취소되면 편성이 통째로 빈다. 30분 밀리는 것과 아예 없어지는 것 중 어느 쪽이 방송사에 나쁜지는 명백하다.
원정팀 이동이 힘들다. 경기가 늦게 끝나면 다음 날 이동이 빡빡해진다. 맞는 지적이다. 다만 시즌 막판에 취소분 55경기가 몰리며 생기는 연전과 이동 부담이 훨씬 크다.
어린이 관중이 못 온다. 가장 아픈 반론이다. 늦은 경기는 가족 단위 관중을 밀어낸다. 여기에는 대안이 있다. KBO가 퓨처스리그에 이미 적용한 방식, 즉 양 구단 합의로 오전 10시 개시를 가능하게 한 조항을 1군 주말 경기에도 제한적으로 열어두는 것이다. 여름 주말 낮경기를 오전으로 당기면 가족 관중은 오히려 더 편해진다.
제안
지금 규정은 폭염중대경보면 취소, 폭염경보면 취소 검토 또는 최대 오후 7시 30분까지 지연이다. 여기서 순서를 바꾸자는 게 이 글의 제안이다.
첫째, 취소를 최후 수단으로 명문화한다. 개시 시각 조정으로 현장 체감온도를 기준선 아래로 내릴 수 있는지 먼저 계산하고, 안 되는 경우에만 취소한다. 지금은 두 선택지가 나란히 놓여 있어 판단하는 사람이 안전한 쪽, 즉 취소를 고르기 쉽다.
둘째, 지연 한도를 오후 7시 30분에서 오후 8시로 넓힌다. 대구·광주처럼 저녁에 실제로 온도가 꺾이는 구장에서 90분은 유의미한 차이를 만든다.
셋째, 판단 기준을 특보 단계에서 구장 실측 체감온도로 옮긴다. 8월 4일 인천 사고의 교훈이 정확히 이것이다. 기상청 특보는 행정구역 단위지만 온열질환은 관중석에서 생긴다. KBO가 경기운영위원의 현장 측정을 도입한 건 옳은 방향이고, 이제 그 측정값이 특보 단계보다 우선하도록 순서를 정하면 된다.
넷째, 순연으로 못 잡는 열은 다른 수단으로 잡는다. 잠실처럼 시간을 옮겨도 체감이 안 떨어지는 구장에는 그늘막, 쿨링포그, 관중석 살수, 입장 동선 단축이 답이다. KBO가 6일 발표에 이 항목들을 넣은 건 잘한 일이다.
리그 차원에서는 더 큰 논의도 시작됐다. 개막을 앞당기고 7월 말~8월 초 2주를 혹서기 휴식으로 비우자는 안, 올스타 휴식기를 7월 말로 옮기자는 안이 거론된다. 한국시리즈가 11월로 밀리는 부담이 따르지만, 매년 8월에 30경기씩 잃는 것보다는 계산이 맞을 수 있다.
폭염은 올해로 끝나지 않는다. 서울은 8월 1일부터 7일까지 7일 연속 폭염을 기록했고, 기상청은 폭염 종료일이 과거보다 열흘가량 늦어졌다고 본다. 매년 8월마다 리그를 세울 게 아니라면, 취소 버튼 앞에 한 칸을 더 만들어 두는 편이 낫다.
참고한 자료
- 연합뉴스 — 프로야구 주말 3연전 폭염 취소…11일 재개·오후 7시 경기 시작(종합)
- 연합뉴스 — KBO, 기록적인 폭염에 경기 시작 시간 최대 1시간 늦추기로
- 조선일보/OSEN — 9일까지 전 경기 취소→11일 리그 재개→9월 6일까지 오후 7시 시작
- 조선일보 — 너무 더워서... 프로야구 사상 첫 전경기 '폭염 취소'
- 한겨레 — 한국 프로야구 8월 5~6일 전경기 '폭염 취소'
- 스포츠조선 — KBO, 긴급 대응안 발표…"최대 1시간 지연 개시 가능"
- 이코리아 — KBO, 폭염 사고에 경기 취소...MLB 폭염 경기 규정은?
- 매일경제 — 폭염으로 멈췄던 프로야구, 1주일 만에 재개
- 아주경제 — '폭염 브레이크' 끝난 프로야구, 11일 레이스 재개
- 시간대별 기온·체감온도: Open-Meteo 재분석 자료(2026-08-04, 각 구장 좌표 기준)
- 폭염 지속일수: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폭염일수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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