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과밀주가만든술 위스키의역사

이 글은 유튜브 「김박사 건강 채널」에 올린 영상의 내용을 글로 옮겨 정리한 것입니다.
1405년 아일랜드의 한 연대기에 짧은 죽음이 적혔다. 한 족장 후보가 생명의 물을 지나치게 마시고 숨졌다는 기록이다. 기록자는 한 줄을 덧붙였다. 그에게는 죽음의 물이었다고.
위스키라는 이름은 바로 이 생명의 물에서 나왔다. 약으로 쓰이던 증류액은 어떻게 세계의 술이 되었을까.
이름의 뿌리: 생명의 물
위스키라는 이름의 뿌리는 아일랜드어와 스코틀랜드 게일어에 있다. 두 말 모두 생명의 물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중세 라틴어 아쿠아 비테(aqua vitae), 곧 생명의 물을 그대로 옮긴 번역어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쿠아 비테는 원래 연금술사와 의사들이 쓰던 말이었다. 영어에서는 15세기 초 연금술 용어로 쓰였고, 브랜디나 위스키 같은 증류주를 가리켰다. whisky와 whiskey, 두 철자의 구분도 20세기에 들어서야 굳어졌다.
증류는 어디서 왔나
서기 300년 무렵 이집트의 연금술사 조시모스는 관이 여러 개 달린 증류 장치를 글로 남겼다. 하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문헌에는 증류한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없다.
증류기를 뜻하는 영어 알렘빅(alembic)은 아랍어 알안비크에서 왔다. 9세기 학자 알킨디는 이 장치로 장미수 같은 향수를 만드는 법을 적었다. 다만 아랍 학자들이 포도주까지 증류했는지는 아직 학계에서 정리되지 않았다.
포도주를 증류해 불이 붙는 물을 얻는 방법은 12세기 이탈리아 살레르노의 의학 문헌에 암호처럼 처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13세기 후반 볼로냐의 의사 타데오 알데로티는 포도주를 증류한 아쿠아 비테의 제조법과 효능에 관한 글을 남겼다. 이때의 생명의 물은 무엇보다 약으로 여겨졌다.
전설과 기록 구분하기
수도사들이 이 기술을 섬나라로 들여왔다는 이야기는 널리 퍼져 있지만 입증된 적은 없다. 성 패트릭이 증류기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전설이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첫 기록
앞서 본 1405년의 연대기가 아일랜드의 이른 기록이라면, 스코틀랜드의 첫 장면은 왕실 장부에 있다. 1494년 회계연도의 스코틀랜드 재무장부에는 왕의 명령으로 아쿠아 비테를 만들도록 존 코르 수사에게 맥아 8볼을 내주었다는 지출이 적혀 있다. 장부는 맥아를 내준 사실만 적을 뿐, 술을 얼마나 만들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1505년 에든버러 시의회는 도시 안에서 아쿠아 비테를 만들고 파는 일을 외과의사·이발사 조합원에게만 허락했다.
퍼지면 통제가 따른다
- 1556년 아일랜드: 곡식을 낭비한다며 총독의 면허 없이 만드는 것을 금지했다.
- 1579년 스코틀랜드: 흉작을 걱정해 귀족과 지주의 집을 빼고 이듬해 가을까지 제조를 막았다.
- 1608년 아일랜드: 토머스 필립스 경이 앤트림 일대에서 아쿠아 비테를 만들어 팔 수 있는 7년짜리 독점 면허를 받았다. 부시밀스 병에 적힌 1608은 이 면허의 해이고, 지금의 회사는 1784년에 세워졌다.
술이 돈이 되자 국가가 나섰다
1644년 스코틀랜드 신분제 의회는 군비를 마련하려고 팔리는 아쿠아 비테 1파인트마다 2실링 8펜스의 소비세를 매겼다.
1707년 잉글랜드와 합병한 뒤 세금은 더 큰 갈등이 됐다. 1713년 영국 의회가 맥아세를 스코틀랜드까지 넓히자, 스코틀랜드 의원들은 합병 해체안을 상원에 올렸다가 4표 차로 졌다. 1725년 맥아세 시행을 앞두고 글래스고에서는 소요가 일어났다. 맥아세에 찬성한 의원의 저택이 약탈당했고, 진압군의 발포로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1784년 정부는 하이랜드와 로랜드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지역마다 다른 방식으로 세금을 매겼다.
밀주의 시대와 1823년 소비세법
세금이 무거울수록 산속의 불법 증류기는 늘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 협회에 따르면 1820년대에는 해마다 14,000개에 이르는 불법 증류기가 압수됐고, 스코틀랜드에서 마신 위스키의 절반 이상이 세금을 피한 술이었다.
전환점은 1823년 소비세법이었다. 면허는 10파운드, 세금은 표준 도수 1갤런당 2실링으로 정했고, 40갤런보다 작은 증류기에는 면허를 주지 않았다. 이듬해 재무장관은 불법 증류를 막는 목적을 이뤘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1824년에는 글렌리벳 계곡의 농부이자 밀조업자였던 조지 스미스가 새 법에 따른 면허를 받았다.
기계가 바꾼 위스키: 연속식 증류기와 블렌디드
합법화 이후 위스키를 크게 바꾼 것은 기계였다. 1827년 로버트 스타인, 1830년 더블린의 이니어스 코피가 잇따라 연속식 증류기로 특허를 받았다. 코피의 증류기는 탑이 두 개였다.
솥에서 한 번씩 끓이는 단식 증류기와 달리, 연속식 증류기는 쉬지 않고 증류한다. 이렇게 만든 그레인 위스키는 몰트 위스키보다 가볍고 순했고, 둘을 섞은 블렌드는 스카치를 찾는 사람을 크게 늘렸다.
1853년 앤드루 어셔가 내놓은 올드 배티드 글렌리벳은 흔히 최초의 블렌디드 위스키로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같은 글렌리벳 위스키끼리 섞은 배팅(vatting)이었다. 1860년 주류법은 세금을 내기 전 보세 창고 안에서 증류주를 섞을 수 있게 해 블렌디드 스카치가 커질 길을 열었다. 같은 무렵 필록세라라는 해충이 프랑스 포도밭을 휩쓸어 브랜디가 귀해진 것도 스카치가 퍼진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무엇을 위스키라 부를 것인가
그러자 질문이 생겼다. 연속식 증류기로 만든 술도 위스키일까. 1905년 무렵 런던 이슬링턴 구의회는 곡물 90%, 몰트 10%로 만든 술을 스카치로 판 상인들을 기소해 이겼다. 정부는 1908년 왕립위원회를 꾸렸고, 1909년 보고서는 그레인 위스키도 위스키로 인정했다. 숙성 기간은 정하지 않았다.
숙성 기준은 1915년에 생겼다. 미숙성 증류주 제한법은 보세 창고에 3년 이상 두지 않은 증류주를 국내에 팔지 못하게 했다. 오늘날 스카치가 지키는 3년 숙성의 뿌리다.
대서양 건너 미국: 호밀과 옥수수
미국에서는 다른 곡물이 주인공이 됐다. 1700년대 초 펜실베이니아의 이민자들은 호밀로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조지 워싱턴의 마운트버넌 증류소도 1799년 위스키를 생산했다.
1791년 미국 의회가 독립전쟁 빚을 갚으려고 국내 증류주에 소비세를 매기자 서부 펜실베이니아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1794년 워싱턴 대통령이 민병대 약 13,000명을 이끌고 나서자 위스키 반란은 흩어졌다.
한편 켄터키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옥수수로 위스키를 만들었다. 버번이라는 이름은 1820년대 중반 인쇄물에 나타나는데, 그 유래는 아직 논쟁 중이다. 침례교 목사 일라이저 크레이그가 1789년 버번을 처음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1870년대에야 등장한 전설이다.
1920년 금주법이 시작되자 음료로 마시는 술은 금지됐다. 하지만 의사가 처방한 약용 위스키는 예외였고, 처음 법은 환자 한 사람에게 열흘에 1파인트까지만 허락했다. 금주법은 1933년 12월에 막을 내렸다. 1964년 미국 의회는 결의를 통해 버번을 미국의 독특한 생산물로 인정했다.
아시아로 건너간 위스키
1918년 말 일본의 다케쓰루 마사타카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글래스고 대학에서 청강하고 증류소에서 일을 배운 뒤 1920년에 돌아왔다. 도리이 신지로는 1923년 교토 근교 야마자키에 일본 첫 몰트위스키 증류소를 짓기 시작해 1924년 11월 완공했다. 건설은 다케쓰루가 이끌었다.
1929년에 나온 첫 국산 위스키는 반응이 좋지 않았지만, 1937년 가쿠빈은 성공을 거뒀다. 다케쓰루는 1934년 홋카이도 요이치에 따로 증류소를 세우고, 위스키가 숙성되는 동안 사과 주스를 팔며 버텼다.
오늘날에는 대만과 인도에서도 위스키를 만들고, 한국에서도 2020년 두 곳의 증류소가 문을 열었다.
정리: 위스키의 역사는 정의의 역사
생명의 물이라 불리던 증류액은 세금과 밀주, 기계와 법을 거쳐 오늘의 위스키가 됐다. 지금 스코틀랜드 규정은 스코틀랜드에서 증류해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하고, 40도 이상으로 병에 담은 술만 스카치라 부른다. 위스키의 역사는 무엇을 위스키라 부를지 정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
중세에 증류주를 약으로 여겼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일 뿐, 술이 건강에 이롭다는 근거가 아니다. 1405년의 기록처럼 지나친 음주는 생명을 위협한다.
개인 건강 문제는 의사·약사와 상의하세요.
참고
- 스코틀랜드 위스키 협회(Scotch Whisky Association) — 1820년대 불법 증류 통계(본문 인용)
▶ 영상: 세금과밀주가만든술 위스키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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